영화 <낙원의 밤>은 "신세계", "마녀" 등 한국 영화계에선 '누아르' 장르로 꽤나 유명세를 떨친 감독의 신작이다. 이번 작품 역시 본인이 가장 잘하는 장르와 스토리를 사용했다. 스토리 전개는 매우 단순하다. 다른 조직의 회장을 해친 '태구(엄태구)', 그를 죽이려는 '마 이사(차승원)', 태구를 배신한 '양 사장(박호산)', 제주에서 만난 '재연(전여빈)'을 중심으로 전개가 이루어진다. 19세 이상 관람 등급을 받은 만큼, 영화는 폭력성이 매우 강할뿐더러 잔인한 요소까지 등장한다. 영화의 장점은 오직 여성 캐릭터 '재연'뿐이다. 박훈정 감독의 영화 중 '마녀'를 제외하고는 여성 캐릭터를 소비하는 방식이 매우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 점을 씻어내고 싶었던 건지, 영화의 결말부는 주인공인 태구가 퇴장한 뒤 오로지 재연에게 초점을 맞추고 전개가 흘러가고 결말 역시 재연이 마무리 짓는 구조다. 막판 20분 정도를 재연이 폭주하는 장면만 보여주다 보니 영화가 끝나면 감독의 변화와 결말에 대해 호평을 남기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 결말에 다다르기 전까지 재연의 역할은 그저 그런 인물에 불과하다. 물론 다른 영화에 비해 수동적인 면이 적고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인 점은 차이가 있다.
* 왜 하필 제주도일까
<낙원의 밤>의 주된 배경은 '제주도'다. 그저 배경으로만 소모되는 것이 아니라 화보 촬영에 버금갈 정도로 풍경이 아름답게 등장한다.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 배경 또한 제주도의 여러 장소를 비추면서 끝난다. 그동안 많은 누아르 영화들은 해외를 배경으로 많이 다뤘다. 비교적 최근 영화인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같은 경우도 필리핀을 배경으로 삼았다. 아무래도 장르 상 주인공이 도피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해외를 주된 배경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인공의 도피처가 '제주도'다. 거리상으로도 주인공에게 훨씬 불리한 조건인 곳을 왜 선택했을까. 의외로 영화는 이 배경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먼저 제주도의 지리적 의미는 주인공과 매우 닮아있다. 육지가 아닌 섬의 형태로, 고립되어 있는 장소. 이는 주인공 태구의 상황과 유사하다. 태구 또한 도망갈 곳이 더 이상 없는, 고립된 인물이다. 또한 재연 역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있다. 이뿐만 아니라 제주도의 별미인 '물회'도 태구와 재연의 관계를 진전시키고 서로를 이해하는 소재로 사용된다. 매우 적절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낙원의 밤>에서 주목할 액션 장면은 '카체이싱 액션'과 '총기 액션' 뿐이다. 여기서 말하는 '총기 액션'은 영화의 후반부 재연의 총기 액션 장면을 말하는 것이고 '카체이싱 액션'은 태구가 마 이사 패거리에게서 도주하면서 등장한 장면이다. 사실 카체이싱 액션 자체는 훌륭하다고 생각했지만 액션의 전체적인 면이 '아수라'의 카체이싱 장면과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재연의 총기 액션 장면은 자비 없고 냉정해서 더욱 좋았다. 불필요한 대화나 감정씬 없이 초고속으로 진행되는 면이 매우 통쾌했다.
엄태구, 전여빈
엄태구 배우 (태구 역) - 그동안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이토록 배우가 안타깝게 느껴진 적은 처음이다. 엄태구 배우는 영화 내에서 쉴 새 없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데 이게 과할 정도로 많이 나와서 후반부에서는 배우가 안쓰러울 정도였다. 이번 작품에서 주인공을 차갑고 극단적인 면만 다루지 않고 인간적인 모습을 다룬 것은 개인적으로 정말 좋았다. 그런 장면이 등장할 땐 마치 배우의 본체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전여빈 배우 (재연 역) -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전여빈 배우의 존재가 아까웠다. 그만큼 캐릭터의 활약성이 전무했는데 막판에 그녀의 존재가 빛을 발한 것 같아서 다행이다. 전여빈 배우의 눈빛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공허함과 허무함이 후반부 액션 장면에서 뚜렷이 드러났던 것 같다. 굉장히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차승원 배우 (마 이사 역) - '독전'에서 보여준 악역 연기보다 훨씬 좋았다. 인물 자체는 독전의 캐릭터와 닮은 점이 많았는데 대사 혹은 디렉팅의 차이인지 이번 역할이 더욱 무섭게 다가왔고, 관객에게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 같다. 특별한 서사 따위를 부여하지 않아서 더욱 악랄하게 느껴졌다.
박호산 배우 (양 사장 역) - 개인적으로 '나의 아저씨'에서 인상 깊게 본 배우다. 처음에는 배역이 박호산 배우의 연기 스펙트럼에서 벗어난 인물이라고 생각했는데 (누아르 조직의 우두머리 역할) 갈수록 역할의 성격과 특징이 드러나면서 캐릭터가 배우에 잘 녹아들었다고 생각한다.